순전한교회 개척이야기

 

-순전한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목회자 이야기


1. 모태신앙? 못해신앙?

저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찍이 목회자의 꿈을 품었고, 이 길은 마치 당연히 걸어가야 할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구원 문제 또한 너무 당연하게 ‘나는 구원받았다’고 여기며 자랐습니다.


2. 신앙의 결단, 그리고 첫 사랑의 고백

고등학생이 되어 어느 정도 철이 들자 스스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매일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겠다고 결단하며,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밤이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처음으로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조심스레 고백했지만, 너무 쑥스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습니다.


3. 뜻밖에 찾아온 공포

그 순간, 마치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저를 강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영혼은 끝 모를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고, ‘이대로 지옥으로 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공포가 밀려왔고, 자신을 저주하는 소리들, 헤쳐 나갈 수 없는 어둠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숨 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벌떡 일어나 학교로 뛰쳐나갔습니다. 학교에 도착해 부모님께 전화해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학교 교실 앞에는 친구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도 친구들도 그 순간의 제게는 위로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4. 평온의 바람과 다시 찾아온 어둠

지옥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로부턴가 살랑이는 바람이 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바람은 온몸을 통과하며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던 공포감은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너무나도 평온한 마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제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잠시 뿐, 다시 공포감에 빠져들었습니다. 숨이 막혀왔습니다. 그날 밤은 친구네 집에서 밤을 보냈지만, 지옥의 공포에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5. 무너지는 확신, 흔들리는 구원

그 후 저는 교회, 기도원,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잘못들까지도 생생한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제 영혼을 죄책감으로 묶어 버렸습니다. 길에서 주운 샤프펜슬 하나로 기뻐했던 사소한 욕심조차 지옥으로 끌고 가는 무거운 쇠사슬처럼 느껴졌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한 채 한 달 만에 체중이 10kg이나 빠졌습니다. 수능이 다가왔지만, 그런 것들은 제게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지옥의 공포는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 절망의 시간을 지나며 제 꿈도, 제가 가졌던 구원의 확신도 산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깊은 고통 속에서 기도할 때면 잠시 찾아오는 평안이 제게 작은 소망을 주었고, 저는 그 희미한 빛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6. 폐허 위에 서다: 하나님이 다시 놓으신 기초

그렇게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10대를 마무리하고, 폐허가 된 영혼의 자리에서 20대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모든 기반을 허무시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간절한 구원의 갈망, 예수님의 구원의 손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내 삶에 찾아왔습니다. 저의 목표는 단 하나, ‘구원’이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가치가 없었습니다. 목회자가 되겠다는 서원기도도 땅을 치는 후회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폐허가 된 나의 마음 세계에서 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비로소 제 영적인 실상을 보게 되었고, 잘못된 구원의 환상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빨리 죽어서 천국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잘못된 구원관을 깨뜨리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면서도 하나님 없는 천국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천국의 삶을 그리던 망상을 완전히 깨뜨려주셨습니다.

주님은 때로는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좋은 책을 통해, 좋은 집회를 통해 내 영혼을 조금씩 다시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참된 구원의 길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구원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시작하는 것임을 알려주시고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님과 사귐의 길에 들어서며 조금씩 영혼과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7. 부르심을 묻다: 신학대학원 문턱에서 갈등

그렇게 점차 영혼이 회복되면서 20대 후반에는 다시 깊은 갈등에 빠졌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앞두고 목회의 길을 걸어야할지 심각한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의 길이 저에게는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른 길을 가면 안될까?’ 많은 고민들이 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밤 ‘이 길을 꼭 가야만 하는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이었지만, 나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꿈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 앞에 앉아 있었고, 예수님은 나의 어깨위에 손을 얹고 계셨습니다. 잠을 자던 나의 몸은 ‘이 때가 기회다’ 싶어서 예수님께 나를 괴롭히던 질문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이길을 꼭 가야합니까?”

그 순간 주님은 내게서 손을 떼시고 노하시며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너에게 생각으로 말하였다!”

신기하게 그 노하시는 모습과 말씀은 저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한 확신으로 바뀌며 평안한 마음을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괴롭히던 의심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는 확신으로 가득찼습니다. 주님은 다시 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는 것에서 깨어난 후 저는 감사했고, 그 동안 나를 괴롭히던 마음의 무게가 사라진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동안 ‘주님을 신부처럼 사랑하는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주님이 주시는 비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곧 저의 마음을 무겁게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8. 사역의 여정, 그리고 또 다른 결단

신대원에 입학한 후 저는 머지않아 사역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사역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여전히 죄의 유혹에 실수하는 자신에 대한 깊은 실망도 하며, 그렇게 넘어지며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중에도 주님은 끝까지 제 손을 잡아 주시고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시작한지 20년차가 되며 또 다른 중대한 결심에 직면하였습니다. 이제 부목회자의 사역을 내려놓고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마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9. “장소가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이다”

약 5년간 사역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개척지를 찾기 시작했지만, 곳곳마다 이미 교회가 자리하고 있어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저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때 주님이 제게 주신 말씀은 한 가지였습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와 나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 말씀은 제 마음을 다시 고요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문득 몇년전 꿈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당시에도 저는 개척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어느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내 영혼에 강하게 다가오는 짧고 강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나의 목적이다”

주님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았습니다. 주님은 개척을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결같이 내 자신이 주님 안으로 더 깊숙히 다가오기를 바라시고 계셨습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10. 주님이 주신 이름: 순전한교회

개척지를 찾으며 기도하던 어느 날, 저는 주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주님, 정말 개척해야 한다면… 교회 이름이라도 알려주십시오.”

다음 날 새벽, 또렷한 음성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순전한교회!”

사실 저는 교회를 개척하면 ‘기본교회’같은 심플한 이름을 짓고, 기본에 충실한 목회를 하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알려주신 이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나는 순전한 사람이 아닌데..’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또 저의 앞길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하셨고, 어떠한 삶으로 초청하시는지 알기 때문에 그 음성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곳 작은 모퉁이에서 순전한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순전하지 않은 사람을 부르셔서 순전한교회로 세우시는 주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감사하며 기대합니다.


11. 순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교회

순전한교회는 예수님을 순전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순전한 신부로 단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 비전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에필로그

“교회는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개척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해서 장소가 아닌 ‘주님과의 관계’를 강조하셨는지를 깨닫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료 목사님의 추천으로 일산의 ‘말씀의 땅’이라는 성경공부 그룹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강사 목사님은 여러 번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우십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을 증언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증인 되라고 하셨지 교회를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는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세워지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강사 목사님은 그 다음 주에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 마음에 울림과 목회의 이정표로 되어 다가왔고 또한, 오랜 고민의 마침표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서야 주님께서 제게 주셨던 동일한 음성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우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증언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주님께서 완성하십니다.

주님의 목적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목적 삼을 때,
주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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